영어공부하다가 보게된 유튜브 영상인데 이 영상을 보니까 카타르항공 승무원으로 일하던 시절 퇴사 말리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입만 열면 퇴사퇴사 노래 부르던 그 시절에 이 영상을 봤다면 어땠을까' 하는 무의미한 생각도 해봤는데, 퇴사라는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상을 봤더라면 좀 덜 충동적으로 퇴사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또 한참 인스타툰 올릴 적에 '왜 승무원을 그만뒀냐'는 질문을 몇 차례 받았는데 이 포스팅이 그 답변이 될 것 같다.
약 5분 정도 되는 이 영상의 골자는 결국 '당신의 마인드를 바꾸라는 것'이다. 이렇게 노력했는데도 여전히 불행하다면 다른 일을 알아보라 거지.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중인 사람들에게 덜 후회스러운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HOW TO FEEL HAPPIER AT WORK
-10 Ways to Completely Shift Your Mindset-
영상에서 제시하는 열가지 방법을 들으면서 떠올랐던 과거의 기억들을 정리해봤다.
1. Realign your goal
내가 여기서 뭘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면 커리어 목표를 재조정해라. 다시 동기부여될 목표를 설정하라.
첫단추부터 잘못 꿰었구나 싶었던 부분. 돌이켜보면 나는 승무원이 되는 것 자체가 목표였지 그 이후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사실 대부분의 취준생들이 일단 취직부터 하고 업무와 내가 맞는지는 해보면서 생각하지 않나. 어떤 일을 하는지 다른 사람의 설명을 듣고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은 한계가 있어 내가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내가 그 일에 맞는지는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승무원에 최종합격했을 때 이후로 큰 성취감을 못 느껴본 게 이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트레이닝은 힘들기만 했고, 일은 고되기만 했다. 일이 익숙해지기 전까지는 출근전까지 공부도 열심히 하고 매비행마다 '이것만큼은 확실하게 하기!' 라는 작은 목표들이 있어서 긴장속에서 작은 성취를 느끼기도 했는데, 일에 적응하고나서는 이런 게 없어졌다. 매번 반복되는 업무에 권태를 느꼈고 그저 이 지겨운 일을 빨리 끝내고 레이오버를 즐기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이 영상에서 일에 적응해서 일이 편해졌다면 그래서 커리어 목표가 없다면 커리어 발전을 위해 새로운 목표를 잡으라는데, 승무원 일은 단순반복업무라서 새로운 목표를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동기부여할 무언가를 퇴사 직전까지 갈구했지만 끝내 그러지 못했고 일에 자부심도 갖지 못했다.
2. Switch up your routine
단조로운 일상을 바꿔보자. 내 일 말고 다른 일에 자원하여 업무 루틴에 변주를 줘보라.
이건 많이 해봤지. 내가 맡은 일만 해도 되지만 동료애라고 해야 하나? 기본적으로 서로서로 도와주는 크루들 사이의 정이 있었다. 내가 주니어 때 시니어 크루들의 도움을 받았던 만큼 나보다 손이 느리고 기내에서 허둥지둥하는 주니어들을 많이 도왔다고 생각한다. 다들 바빠 일손이 부족할 때는 시니어리티 따질 겨를도 없이 네 존 내 존 없이 온 기내를 누비며 발이 퉁퉁 붓도록 일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들었던 선배들의 조언이 있다. 너무 열심히 일하지 말라는 것. 어차피 내가 내몫 이상의 일을 더 한다고 해서 알아주는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며 내 몸만 축날 뿐이라고 했다. 여기서는 눈치껏 게으르고 남을 잘 시켜먹을 줄 알아야 건강하게 오래 남아 있을 수 있단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에휴 누굴 붙잡고 시키느니 그냥 내가 하고 말지.'라는 마인드가 나를 정신적으로든 신체적으로든 더 빨리 지치게 만들었던 것 같다.
3. Dress to impress
기내에서는 승무원이 회사의 얼굴이다보니 매비행 전에 그루밍 오피서한테 그루밍 체크를 받고 통과해야 출근 가능했다. 당연히 회사에서 정해준 유니폼/액세서리 등만 착용 가능했으며, 변화를 줄 만한 건 회사의 규율을 어기지 않는 선에서의 메이크업, 헤어스타일, 네일, 액세서리 변화 정도.
외국 회사라서 메이크업의 수용폭이 넓었기에 과감한 메이크업을 시도하는 크루들이 많았다. (덕분에 재밌었다.)나는 그정도 용기와 노력까진 없어서 립스틱 색깔을 바꾸는 정도만 실천했다. 외모를 바꾸고 꾸미는 데 원래 큰 관심도 없을 뿐더러 출근할 때는 편한 게 제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볼걸 하는 생각이 든다. 어차피 한국에서는 그런 과감한 스타일을 해볼 일이 잘 없긴 하니까. 그리고 메이크업이 세면 다른 크루들이 만만하게 보지 않는다는 장점도 있다.
4. Make meaningful relationship
회사 동료들과 유의미한 관계를 형성하라. 회사 사람들과 보내는 시간은 사실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보다 많다. 그들과 관계가 좋다면 당연히 회사도 일도 업무효율도 좋아지겠지?
비행을 막 시작했을 때는 모든 크루들과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매 비행마다 계속 바뀌는 크루세트 때문에 몇번 비행하고나면 내가 누구를 만났었는지 기억도 안 났다. 운이 좋아 이번에 좋은 크루들을 만나서 행복한 비행을 했다쳐도 이들을 언제 다시 만나게 될지 알 수 없으며 다시 만나도 못 알아볼 때도 있었으니 수백시간의 비행 후에는 관계 형성 자체를 포기했던 것 같다.
게다가 바쁜 스케쥴에 몸과 정신은 점점 지쳐갔고 직접 경험한 문화차이에서 강화된 편견도 꽤 생겨서 어느 순간부터 한국인(일본, 대만까지는 수용) 크루가 아니면 업무 외의 일로는 말도 잘 안 섞었다. 언어장벽에 대한 두려움도 작용하고 있었고 말이다.
5. Take a break
힘들 땐 쉬었다 가자. 가볍게 산책도 하고, 커피도 마시고.
정신없이 식사서비스를 마치고 기내 조명을 꺼서 손님들 대부분을 재우고나면 그제서야 휴식시간이 찾아왔다. 이때서야 겨우 엉덩이를 붙이고 식사도 하고 커피도 마실 수 있다. 하지만 세달에 한번 있는 어세스먼트 날이나 체커가 있어서 사무장/부사무장이 예민한 날에는 불가능했다. (그런 재수없는 날은 피하고 싶을수록 자주 돌아온다.) 그럼 화장실에 숨어서야 비로소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렇게까지 살아야하나 세게 현타를 맞았었지.
별것도 아닌 이유로 쉽게 잘리거나 피곤한 일에 휘말릴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스트레스가 컸다. 저런 회사는 '그래, 자를 거면 잘라라. 내가 여기 아니면 갈 데가 없는 줄 아나.' 이런 마인드로 뻔뻔하게 내 일만 잘해냈더라면 사실 별 문제 없었을 것 같기도 한데 다들 벌벌 떠는 분위기 속 그 당시에는 그게 안 됐다.
6. Practice daily gratitude
매일 일상 속에서 감사한 일을 찾아보라.
감사일기 써봤던 사람으로서... 이게 그렇게 효과가 있는지 모르겠다. 안 하는 것보다는 나으려나. 나중에는 감사일기에 손님욕, 크루욕, 상사욕, 회사욕을 쓰고 있었다. 아직도 보유중.
7. Reward yourself
열심히 일한 당신에게 스스로 보상을!
승무원 직업의 가장 큰 보상은 뭐니뭐니해도 여행이 아닐까? 행선지가 많은 항공사의 승무원이 아니었다면 한평생 단 한번 가보지 못했을 곳에 정말 많이 가봤으니 이건 확실히 보상이다. 체류시간에 여유가 있었다면 더더욱 좋았을테지만. (레이오버 체류기간이 긴 다른 항공사들이 참 부러웠다.)
비즈니스 승무원이었더라면 기내에서 체력을 좀더 비축했다가 레이오버 때 발산했을텐데 안타깝게도 이코노미 승무원이라서 호텔에 도착하면 씻자마자 바로 뻗기 일쑤였다. 승무원의 꽃은 비즈니스인데 그걸 못해봐서 미련이 살짝 남아있다.
베이스인 도하에서는 주로 오프 때 친구들(=회사동료)을 만나 점찍어둔 멋진 식당이나 까페에 가서 좋은 것을 먹고 마셨다. '그래, 내가 이 일이 아니면 어떻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국적인 음식을 먹어보겠어!'하며 행복을 느꼈으니 이또한 큰 보상이다. 즐거운 식사를 하면서 얼마전 비행에서는 얼마나 거지같은 일이 있었는지 서로 돌아가면서 얘기하고 욕하고 깔깔거리는 게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됐다고 믿었는데, 장기적으로는 정신 건강에 좋지 못했다. 애초에 회사동료가 친구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니. 쉬는 순간에도 회사/일 얘기를 하는데 그게 정말 쉬는 것일까?
쇼핑은 별로 즐기지 않는 편이지만, 회사 베네핏을 누리기 위해 직원할인이 되는 브랜드에 가서 옷을 구입하기도 했다. 다만 내 최애 브랜드는 직원할인이 안 됐다. 명품 브랜드도 할인이 되는 게 꽤 있었는데 명품알못이라서 혜택을 한번밖에 누려보지 못했던 게 가끔 아쉽다.
그럼에도 이런 셀프보상이 있어서 그런대로 힘든 시간들을 잘 견뎠던 것 같다. 보상은 역시 중요해!
8. Avoid negativity
부정적인 사람들을 피해라. 피할 수 없다면 함께 보내는 시간에 제한을 둘 것.
어느 회사든 조직이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면 불만을 품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다. 이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싶은데. 모든 문제는 이 부정적인 말에 휩쓸릴 때 시작된다.
구 회사는 지금 생각해봐도 말도 안되는 게 많았다. 따지고보면 좋은 점도 많지만 힘든 것도 못지 않게 많았달까. 게다가 원래 조직 안에 있을 때는 조직의 장점은 당연해지고 내가 직접 겪어본 단점은 더더욱 크게 느껴지는 법이다. 종교/문화적 차이까지 있으니 이해 안되는 건 파도 파도 끝이 없었다. 이런 부정적인 이야기는 쉽게 퍼져나갔다. 나도 거기에 휩쓸린 사람 중 하나고 내가 받은 부정적인 에너지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리게 됐던 것 같다.
어차피 그곳을 당장 떠날 생각이 없다면 굳이 머리로 알고 있는 사실을 입으로 복기하지 않는 게 좋은 것 같다. 반복재생할수록 그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에 잠식당하는 건 본인 스스로일테니까.
9. Remind yourself why you like working there
왜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떠올려 보자.
다른 회사들이 있었음에도 내가 이곳을 선택했다면 분명 그 이유가 있었을테다. 회사에서 일하면서 업무에 동료들의 말에 휩쓸리다보면 어느 순간 잊고 마는 그 이유. 내가 일반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승무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워라밸과 베네핏이 좋을 것 같아서였다. 실제로는 워라밸이 좋은 직업은 아니었지만 베네핏은 이전 회사보다 훨씬 좋았다. 월급은 두배 이상이었고 복지면에서도 좋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이전에 다녔던 회사를 떠올리며 버텼는데 실제로 코로나19 이전까지는 꽤나 잘 먹혔다.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1년간 승무원 직업 베네핏이 사라지면서 더이상 일을 지속할 이유를 잃어갔다. 코로나19가 가장 심했을 때는 숙소에 갇혀있다시피 시간을 보냈고 (플랫메이트랑 잘 안 맞아서 더 힘들었다), 이후 서서히 규제가 사라지면서 레이오버가 돌아왔지만 괜히 밖에 나갔다가 인종차별이나 시비에 휘말릴까봐 레이오버도 못 즐기게 됐을 뿐더러 회사 안에서 대량해고 칼바람이 불면서 그로 인한 불안도 커져만 갔다.
한창 안 좋은 일이 엎친데 덮친격으로 몰려오던 때 하필 또 미치광이 사무장한테 잘못 걸리는 바람에 스트레스 최대치를 찍고 다 때려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10. Find another job
위에 언급된 아홉 가지의 방법을 다 써봤는데도 여전히 불행하다면, 이직해라!
당장 회사를 때려치고 싶었지만 당시 스스로 생각해도 감정이 폭주하는 상태였기 때문에 퇴사는 일단 미루고 무급휴가를 받았다. 매니저가 고작 한달 주려는 걸 이래저래 구실을 만들어서 6개월 정도 한국에 체류할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와 탱자탱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찌나 세상이 아름답던지! 동시에 다시 카타르로 돌아갈 생각에 너무 괴롭기도 했다.
그때 결심을 굳혔다. 난 이제 그곳을 완전히 떠날 때가 됐노라고. 도망치듯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왔지만 그래도 그곳에 나의 기쁨도 추억도 슬픔도 있었나니. 제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려고 카타르에 돌아가서 짐도 싸고 집도 정리하고 유니폼도 반납하면서 직접 퇴사수순을 밟았다. 마지막 2주간 만날 수 있는 사람은 다 만나면서 작별인사까지 하고 떠나온 카타르. 그제서야 왜 다들 애증의 카타르라고 부르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앞으로 내 삶을 이만큼 버라이어티하게 만들어줄 일이 또 있을까? 힘들었지만 그만큼 추억할 거리도 이야깃거리도 많은 직업. 다시 하라고 하면 자신은 없지만,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서 정말 행복했다. 하지만 이제는 추억의 뒷편으로 영원히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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